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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도전과 혁신이 사라져가는 나라

최은영 기자I 2025.03.31 05:30:00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 불도저 스타일로 유명한 현대그룹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이 어려운 일을 밀어붙일라치면 담당자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불가하다는 대답을 내놓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에 대한 정 회장의 반응이 그 유명한 “이봐, 해봤어”라는 어록이다. 지레 겁먹고 안 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도전정신을 가지고 어떻게든 해낼 방법을 찾으라는 주문이었다. 결국에는 그런 도전정신으로 불모지에서 자동차산업과 조선산업을 일궈냈다.

현대그룹뿐만 아니라 삼성, LG 등도 이런 도전정신을 발휘해 반도체와 전자산업을 일궜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대한민국은 1990년대 중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의 수준은 여전히 세계 변방의 이름 모를 작은 기업에 불과했다. 선진기업을 흉내 내 물건을 만들어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것만으로 세계 일류기업이 될 수는 없었다.

그 한계에 도전한 것이 삼성 이건희 회장이었다. 이 회장은 세계 변방의 자그마한 기업 삼성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만들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런 원대한 목표는 지금까지의 기업문화와 행동 방식으로는 달성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어록이다. 특단의 변화와 혁신정신을 조직원에게 주문한 것이다. 결국에는 조직에 혁신 마인드를 불어넣는 데 성공했고 삼성은 세계 초일류기업이 됐다.

삼성의 이런 혁신 시도는 국내 다른 기업으로도 확산해 혁신의 기업문화를 정착시켰다. 그리고 때마침 진행된 정보통신을 기반으로 한 3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흐름에 동참할 수 있었다. 1차 산업혁명 때는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줄도 몰랐고 2차 산업혁명은 한참이나 뒤늦게 따라간 나라였지만 3차 산업혁명에는 드디어 선진국과 나란히 동참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한국경제를 선진경제로 도약시켰다.

이처럼 한국 경제의 성장 역사는 도전과 혁신의 역사였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이 이끈 역사였다.

그런 대한민국 경제에 도전과 혁신의 정신이 시들어가고 있다. 기업들은 역동성이 떨어지고 고인물이 돼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20여 년 동안 한국의 10대 그룹과 10대 수출상품은 거의 변화가 없다. 역동성의 상실은 경쟁력 상실로 이어진다. 그 조짐은 이미 진작부터 나타났다. 반도체 경쟁력은 밀리고 인공지능(AI) 혁명에 뒤처지고 있으며 플랫폼 기업은 맥을 못추고 있다.

무엇이 잘못돼서 그런 걸까. 그 이유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역설적으로 도전과 혁신의 역사 그 자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행위가 지나치면 부작용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편법과 탈법, 불공정 행위들이 그것이다.

경제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공정한 경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압축적 도전과 혁신 과정에 비례해 기업에 대한 규제도 같이 증가했다. 촘촘한 규제들이 양산됐고 결국에는 규제 왕국이 됐다. 이제는 안되는 것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 되는 것이 없는 나라가 됐다. 이런 환경에서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규제는 혁신을 가로막는다.

정주영 회장이 지금 시대에 “이봐 해봤어”라고 한다면 아마 이런 보고를 받게 되지 않을까. “어떻게든 해보려 했는데 규제 때문에 어떻게도 할 방도가 없다”고 말이다.

압축적인 성장의 반작용으로 생겨난 규제가 이제 성장과 혁신을 가로막는 주범이 됐다. 규제개혁이 절실하지만 저항도 강하다. 정치만큼이나 경제도 양극단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기는 마찬가지다. 혁신 세력과 규제 세력 간에 타협은 없다. 한쪽에서는 시장의 힘만이 옳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시장을 부정하려 든다.

이제 우리 경제 발전 역사의 여정을 뒤돌아보며 서로 한 발짝씩 물러서는 타협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 시대 양극단의 정치·경제·사회를 아우를 또 다른 어록이 등장하기를 학수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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