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068h
device:
close_button
X

YB·크라잉넛, 그리고 홍대 롤링홀[임진모의 樂카페]

김현식 기자I 2025.04.14 05:15:00

수익 ''N빵'' 이어온 두 밴드에 무대 내어준 홍대 공연장
올해 나란히 30주년 맞아
긴 세월 참고 견디고 버텨온 ''기적''에 진심 어린 축하를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늘 변방에 있다지만 한국 록은 언제나 희망과 미래라는 팻말을 따라 도도히 흘러왔다. 수많은 우여곡절과 위기로 둘러싸여 로커로, 밴드로 버티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럼에도 올해 두 밴드가 30년의 긴 이력을 써냈다. 음악산업의 혹독한 경제학 속에서 특히나 구성상 운영이 쉽지 않은 록밴드가 그 세월을 견뎠다는 것은 실로 작은 기적이다.

YB(와이비)와 크라잉넛. 두 밴드는 1990년대 중후반 리스크가 만연한 상황에서도 록의 자유와 음악의 다양성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믿었다. 감사하게도 줄지은 히트곡들은 그들에게 대중적 위상을 안겨주었다. 윤도현이 이끄는 밴드 YB는 ‘사랑했나봐’, ‘나는 나비’, ‘잊을게’ 등 굵직한 애청곡들 외에 2002 한일월드컵 당시를 뒤덮은 ‘오 필승 코리아’로 당대의 어떤 밴드도 넘지 못할 인기의 금자탑을 쌓았다.

‘오 필승 코리아’ 당시 언론은 모처럼 록이 대중과 밀착했다고 해서 YB를 ‘새천년 록 르네상스의 기수’라고 명명했다. 만족할 줄 모르는 록 파워의 소유자인 윤도현은 최근에는 일반의 상상을 깨는 더욱 강하고 소란스러운 ‘메탈’, 그것도 주류 아닌 하위 장르의 메탈을 30주년 기념 콘텐츠로 들고 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이 장르를 “워낙 하고 싶었던 음악”이라고 밝혔다.

크라잉넛 또한 록 에너지를 분출할 통로를 잘 찾았다. 분노 가득하고 사나운 펑크를 음악적 재료로 삼아 주류와 별도인 인식과 공간, 이른바 ‘인디’를 주목하게 하고 꽃 피우는 의미 있는 공로를 세웠다. 우리의 오랜 음악 정서를 전제할 때 ‘말달리자’가 대중적 호응을 창출한 것은 돌이켜보면 신기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점을 관통할 때 만해도 그들이 몇 년 하다 말지 30년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본 사람은 없었다.

이후에도 ‘밤이 깊었네’, ‘룩셈부르크’, ‘좋지 아니한가’ 등으로 히트 퍼레이드를 이으며 전설의 대열에 들어선 그들은 “30년 된 인디, 앞으로 30년 더 가야 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YB와 크라잉넛은 3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를 홍대의 작은 공연장 ‘롤링홀’로 정했다. 때마침 롤링홀도 개관 30년을 맞았다. 두 팀은 밴드에 설 무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절감하기에 그리고 ‘의리’가 몸에 배어 있기에 롤링홀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이 대목에서 짚어야 할 게 있다. 30년을 이어갈 수 있었던 버팀목은 과연 무엇인가. 당연히 음악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겠지만 또 하나 결정적 문제가 있다. 삶의 기본이면서 늘 말하기 불편한 돈 얘기다. 서구든 우리든 훌륭한 음악 궤적을 그려낸 밴드들로 하여금 음악적 쾌감 바로 옆에 고통을 수반한 것은 수익을 둘러싼 멤버 간의 갈등이었다. 어느 면에선 성격과 견해차보다 이게 더 컸다.

이 점에서 YB와 크라잉넛의 N분의 1 분배, 그들 말로 ‘N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밴드는 구성원들의 하모니를 바탕으로 하지만 성공에 더 이바지한 리더가 있기 마련이고 이는 수익 분배의 어려움을 예고한다. 해결책은 우정과 팀워크 그리고 대동소이를 내걸어 ‘깨끗이’ 수익을 멤버 숫자로 나누는 것이다. 지분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방식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솔직히 YB는 압도적 카리스마의 윤도현 팀이지만 돈 문제만은 누구에게 치우침이 없이 공정하게 처리하면서 팀 단결력을 강화했고 오랜 세월을 내달릴 수 있었다. 크라잉넛은 초중고 동창들의 연합이라 ‘N빵’이 좀 더 자연스러웠다고 한다. 태생적 갈등상태에서도 다름 아닌 ‘경제 정의’가 고통과 긴장에 대한 방어력이라는 것을 인지한 결과일 것이다.

내가 많이 갖는 것보다 음악을 오래 하는 것이 훨씬 즐거운 것 아닌가. 김천성 롤링홀 대표도 음악이 먼저지 돈은 나중 문제라는 말을 달고 산다. 30년을 참고 견디고 버텨온, 꽤나 미련한 YB·크라잉넛·롤링홀에 진심 어린 축하의 말을 전한다. 확실히 총명한 자보다 어리석은 자가 마지막까지 남는다. 미련함은 록과 밴드의 장수 인자다.

배너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Not Authoriz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