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를 면담했던 경찰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는 “정남규는 극단적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살해하고 끝난 사람”이라며 “살인의 끝은 자기 자신이었다”고 말했다.
재판정에서 “살인을 못해 답답하고 우울하다”,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며 빨리 사형을 집행해달라고 호기를 부리던 그였지만 생전 구치소서 쓴 공책에서 불안한 심리가 드러났다.
정남규 공책에는 ‘사형을 폐지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요즘 사형 제도 문제가 다시…’라고 쓰여 있었는데, 법무부는 그의 극단적 선택 동기를 당시 ‘조두순 사건’ 등으로 고조된 사형제 집행 여론에 따른 불안감으로 추정했다.
유행가 가사와 같지만 정남규가 공책에 쓴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이란 글에서 무력감과 삶에 대한 의지가 없을 만큼 허약해진 심리도 나타났다.
단 한 번의 사죄도 없던 정남규는 죗값을 다 치르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고, 33명의 피해자와 유족들은 원망할 대상조차 없어졌다.
정남규뿐만 아니라 2007년 4월 사형이 확정된 후 부산구치소에 수감됐던 사형수가 극단적 선택을 했고, 같은 해 2월에도 천안구치소 수감 중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형수도 있었다.
사형 제도가 있어도 집행하지 않는 우리나라와 달리 해마다 사형 집행을 계속해 온 일본에선 사형수가 ‘집행 시기’ 통보를 두고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일본은 사형 집행 전날 사형수에게 미리 알려 가족 등과 마지막 면회를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사형수의 극단적 선택 사례가 생기면서 집행 당일 1~2시간 전 통보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에 사형수 2명이 “존엄하게 마지막을 맞이할 수 없다”며 위헌 소송을 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오사카지방법원은 “사형수에게 집행 시기를 사전에 알 권리는 보장돼 있지 않다”며 “사형수의 심적 안정이나 원활한 집행 측면에서도 합리적”이라면서 기각했다.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을 집행한 우리나라는 사형 판결은 계속 있었기에 현재 사형수가 59명에 이른다. 다만 2016년을 끝으로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한 사례는 없다.
15대 국회부터 22대 국회까지 사형제 폐지 법안이 빠짐없이 발의된 가운데, 시민 사회와 종교계 등에선 찬반 의견이 여전히 팽팽하다.
‘사형 집행 가능성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범죄 억제 효과가 있다’는 의견과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수사와 판결의 오류 가능성 때문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맞서고 있다.
반대 여론이 우려하는 일이 실제로 일본에서 벌어졌다.
일본은 최근 2년 9개월째 사형 집행을 하고 있지 않은데, 1966년 일가족 살인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사형 판결을 받고 약 48년간 수감 생활을 하다 지난해 10월 재심에서 혐의를 벗고 무죄가 확정된 하카마다 이와오(89) 씨 사례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지난해 10월~12월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10명 중 8명이 사형제를 지지할 정도로 일본 내 사형 집행에 대한 요구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